최근 위상이 흔들리고는 있지만 일본은 재생의료 분야에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정상 국가다. 한국이 앞선 생산능력을 기반으로 일본과 협업하면 두 나라가 윈윈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일본에서 유도만능줄기(iPS)세포 연구로 아직 상용화된 제품이 없다고 하지만, 일본 정부가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원한 줄기세포 치료제 관련 전임상 연구과제 18개 가운데 15개가 이미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파킨슨병 치료제 상업용 임상을 준비하는 미국 연구팀보다는 한발 늦었지만, 교토대 iPS 연구소(CiRA)의 타카하시 준 교수팀의 파킨슨병 치료제는 일본 스미토마 파마에 기술 이전돼 상업용 임상을 준비 중이다. 코베 이화학연구소의 타카하시 마사요 박사팀은 건강한 사람에게 채취한 iPS줄기세포를 이용한 황반변성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십 여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여기에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재생의료 제품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도 탄탄하게 구축했다. 법률적 토대는 물론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틀도 마련됐다. 일본에서는 세포치료제를 승인받으려면 효과성뿐 아니라 경제성까지 평가받아야 한다.
◇ 일본 명실상부한 재생의료 세계 최정상 국가
국내 전문가들은 기초연구와 연구개발 플랫폼을 갖춘 일본과 손을 잡고 글로벌 재생의료 분야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정부가 앞서 움직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기업이 있기 때문에, 생산력 측면에서는 일본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차의과대학교 의생명과학과 송지환 교수는 “재생의료 분야에서는 일본과 협업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며 “일본은 줄기세포 연구의 근간이 되는 발생생물학, 세포생물학, 신경생물학 등 기초연구 분야 학문의 깊이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현 정부 들어 한일 관계가 회복된 지금이 기회”라고도 말했다.
송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헌팅턴병 등 퇴행성 신경계 질환 환자의 세포주를 구축하고, 인간 백혈구 항원 동형접합 iPS 세포주를 수립해 환자맞춤형 면역 세포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한 과학자다. 한국줄기세포학회 회장을 지낸 그는 현재 iPS 세포를 활용한 신경퇴행성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송 교수에 따르면 일본의 성향이 꼼꼼하고 신중하다면, 한국은 속도감이 장점이다. 예를 들어 일본은 일선 의사들이 관여하는 성체 줄기세포 치료 규제는 대폭 풀었지만, 세포치료제로 개발하는 iPS 세포주는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규제를 강하게 묶어뒀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한국의 세포 치료제 분야 임상 허가가 일본보다 더 많다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은 재생의료 규제 완화를 위한 FDA는이 본격화되고 있다. 먼저, 규제를 대폭 완화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법(이하 첨생법)이 이르면 올해 1월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첨생법은 지난해 12월 22일 총리실 주축으로 열린 제1차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에서 바이오헬스 혁신을 위한 7가지 주요 규제 개선 과제에도 포함됐다.
현행법에서 첨단재생의료는 중증, 희귀, 난치성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에만 국한해 사용 가능했는데, 이 법이 통과되면 일반 환자도 재생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내 세포치료제 바이오벤처들이 임상 및 연구를 확대해 진행할 수 있고 매출도 기대할 수 있다.
◇ 인력 확보 제도 개선 등은 풀어야 할 숙제
일본이 앞서 있지만, 무조건 따라해서는 안된다는 조언도 있다. 이번 개정 첨생법에 포함된 iPS세포 관련 규제가 대표적이다. 송 교수는 “개정 첨생법이 일본의 법을 그대로 따 오다보니, iPS세포에 대한 강한 규제도 그대로 따라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다 자란 세포를 iPS세포로 역분화하는 기술은 확립돼 있으니, iPS세포를 다양한 세포로 분화해 실제 사용할 때만 검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불필요한 규제는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규제 당국의 세포⋅유전자 분야 전문 인력 부족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 분야가 성장할 것을 예상하고 3년 전부터 50명 정도 인력을 보강했다. FDA는 지난해 3월에는 세포 및 유전자 치료법 심사를 위해 생물의약품 평가 및 연구센터(CBER)에 치료제사무국(OTP)을 세웠다. 이 사무국에는 500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할 것으로 예상된다.
FDA가 인력 보강에 나선 것은 그만큼 세포⋅유전자 치료제 개발이 미국 내에서 활발하기 때문이다. 미국 FDA에 제출된 세포⋅유전자 임상신청(IND)건수는 2012년 108건에서 2021년 300건으로 늘었다. 2021년은 코로나19로 신약 임상 신청이 크게 줄었던 시기였다.
고령화 사회에 줄기세포 치료는 지역 필수 의료가 무너지는 현실에서 지방 병원을 살리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이병건 지아이이노베이션 회장은 “국내에서 줄기세포 시술을 받을 환경만 조성한다면 일본으로 의료 관광을 떠나는 국내 소비자를 붙잡을 수 있고 외국인 의료 관광객도 유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줄기세포 치료로 건강 관리가 가능하다면 고령화시대 의료비 경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한국의 줄기세포 처리 시설 수준은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줄기세포 처리시설 관리를 각 지역위원회가 담당하기 때문에 까다롭게 관리하지 않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한국 대학병원과 바이오벤처의 세포처리시설이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 파나셀 최승호 대표는 “한국 정부가 줄기세포 배양시설 관리를 등급별로 나눠서 공개하면 전세계 환자들에게 일본보다 한국이 낫다는 신뢰를 얻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한일 손잡으면 항노화 분야까지 주도할 수 있어”
미국과 유럽이 iPS세포보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집중하고 있지만, 시장의 확장성은 iPS가 크다. 요즘 과학계에서는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역노화 연구가 한창이다. iPS세포 기술은 다 자란 세포를 원시상태로 되돌릴 수 있으니, 늙은 세포도 젊게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한 항(抗)노화 바이오 기업 ‘앨토스랩’이 이 연구를 하고 있다. 이제 항노화가 아니라, 젊음을 되찾는 노화 역전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송지환 교수는 “야마나카 팩터(다 자란 세포를 iPS세포로 되돌리는 유전 기술)를 활용하면 병에 걸린 세포를 젊게 하고, 치료도 할 수 있을 것이란 가능성을 봤다”고 설명했다. 다만 세포 역분화가 잘못돼, 세포가 분열을 멈추지 않고 암으로 발전할 위험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송 교수는 한일 협력에서 한국 바이오벤처의 생동감을 적극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지난해 10월 일본 다케다제약이 스타트업 육성 기구인 ‘아이파크’의 문호를 한국으로 확대한 것도 한국의 벤처 정신을 높이 산 때문이다. 송 교수는 “한국은 투철한 벤처정신을 일본에 불어넣고, 일본은 빅파마의 오랜 역사와 노하우로 신약 개발의 뒷 단계를 뚫어나가는 한일 협력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일이 손을 잡으면 재생의료 분야에서 속도감 있는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국내제약사가 개발한 줄기세포 치료제 몇 개로는 재생의료를 국가 산업으로 키우기 어렵다”며 “일본과 한국이 함께 시장 환경을 만들고, 규제 풀어 줘야 서로 윈윈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으면 난치병 치료는 물론이고 항 노화 분야에서도 아시아가 주도권을 잡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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